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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하나쯤은 바꿔 보이겠다. 그런 헛소리를 하는 세상이 좋다.

세상 하나쯤은 바꿔 보이겠다. 그런 헛소리를 하는 세상이 좋다.

도전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무언가를 뒤엎고 싶어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것은 사회에서 어떤 시선으로 보여지고 있을까? 어떤 의미가 그곳에 부여되었을까?

도전하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적었다. 감소 일로를 걷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시대에는 자신의 가능성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마음도 이해한다. 그 이상으로, 지금, 이 현재의 세계가 인생을 만족시키기에는 충분하고, 굳이 한 발짝 내디딜 필요도 없다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나 자신으로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에 계속 도전하고 싶은 마음은 계속해서 타올랐다. 지금은 아주 미미한 힘일지도 모르지만 '세상을 바꿔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눈앞의 문제나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한 방을 날리고 싶다'는 충동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하든 불가능하든 상관없이, 항상 새로운 개념으로 일을 시작했다. 꿈같은 이야기라고 동료들에게조차 부정당했던 해외 사업을, 첫 창업과 동시에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까지의 시대에서 보면, 단순한 '취미 기호'에 불과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일본 사회에서 보면 '세상을 바꾸고 싶다'거나 '자극적인 서비스를 세계에 내보내고 싶다'는 것은, 단순히 자신이 '그렇게 하고 싶다'고 바라기 때문에 하는 일일 뿐이었다. 기본적으로 '이것이 갖고 싶다 저것이 갖고 싶다'는 물욕이나 '저 사람과 섹스하고 싶다'는 성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있어도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도전의 본질이었던 것 같다. 어디까지나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간절히 바라는 사람의 '취미 기호'였던 것이 아닐까? 실제로는, 그 도전에 생활이 지탱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사람이 마음대로 하면 된다. 그런 취미 기호라고 생각하면,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도, 딱히 그런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도 납득이 간다. '도전하지 않아도, 평온하고 온화한 나날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다. 억지로 무언가를 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언가를 바꾸려 하는 사람이 냉담한 시선으로 보여지는 일도 종종 있었다.

하물며 '위험'이나 '두려움'마저 품게 되는 취미 같은 것은, 흥미의 대상으로 삼기에는 너무나 변태적인 영역이다. 말하자면, 모두가 이성적이 될수록, 당연하게도 평온을 바라게 된다.

그런 변태적인 취미가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평온이 무너졌을 때일 것이다. 평온이 무너졌을 때, 모두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깨닫고, 일어서기 시작한다. 그런 시대적 배경이야말로, 도전이라는 말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이다. 그러므로, 특히 도전하는 것에 흥미가 없는 세상은, 평화롭다는 것이다. 분명, 지금까지의 일본은 좋은 시대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두가 평온을 바란다면, 쇠퇴해 가는 것은 눈에 뻔하다. 모두가 헝그리 정신을 가지고 '절대적으로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위치를 구축하겠다'고 생각하는 세상은, 그것대로 좋지 않겠지만, 요점은 균형의 문제이다. 그런 마음이 너무 적어도 안 되는 것이다.

자, 지금까지는 안정기였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의 일본은 어떨까?

분명, 전환기일 것이다.

이제는 너무 뒤처져서 '변화하자'고,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다.

그런 시대의 전환점을 느낀다.

대기업들이 계속해서 도전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 가슴이 설레는 것을 느꼈다. 토요타가 인공지능에 1200억 엔을 투자했다. 이것은, 자율주행이나 자동차에 인공지능을 심는 전조일지도 모른다.

Sony도 순식간에 VR 헤드셋을 만들어 세계에 앞서 출시하려고 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집단 지능 로봇을 세계 최초로 판매 시작했다. 닛산도 어느새 자율주행 가능한 EV를 발표했다. 샤프도 솔직히 너무나 수수께끼 같지만 로봇 전화 같은 것을 내놓았다.

그리고, 실제로 주변의 중소기업들도 도전을 시작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만든 스마트폰이나 웨어러블 시대에 '관망'하다가 뒤처진 일본이, 서서히 도전하기 시작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런 사실에 내 마음은 그저 두근거리고 있음을 느꼈다. 무언가 일어날 것 같고, 앞으로 재미있는 일이 내가 있는 땅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은가.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기업의 활동에 자극받아 설레는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 무언가 도전하지 않으면 일본은 쇠퇴해 갈 뿐이다.

그런 의식을 가지고 도전이 받아들여지는 세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느낀다.

역시, 이런 도전적인 세상이 좋다.

단순히, 내가 태어난 나라에 활기가 없다는 것과, 세계 사람들과 이야기했을 때, 예전만큼 일본 기술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분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 안녕이라고 말하며 해외로 가버리는 것도 그것대로 다른 것 같았다.

사람의 행복은 다양하니까, 굳이 일본이 쇠퇴해도 행복하다면 괜찮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걸로 괜찮을까? 예를 들어 일본 경제가 쇠퇴하고 영향력이 없어졌다고 치자. 다른 아시아 국가들보다 일본인이 싼 급료로 일하고, 활약하는 것은 모두 일본인 외의 사람들이라고 치자. 그걸로 납득할 수 있을까? 돈을 계속 일본에서 쓰는 것도, 사회를 발전시키는 것도 외국인. 그걸로 괜찮을까?

나는 그런 세상은 좀 납득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분하다고 생각했다. 감정의 문제이고, 자존심의 이야기다. 그렇게까지 나에게 애국심 같은 것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역시 분했다. 그래서 움직였다.

그런 가운데, 대기업도 중소기업도, 서로 먼저 위험을 감수하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대를 느꼈다. 왠지 모르게, 정말이지,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분명, 아직 일본은 할 수 있다. 엄청난 능력이 잠들어 있다. 그런 설렘이 넘치는 시대가 바로 눈앞에 있다는 것을 느낀다.

도전한다는 것의 정의가, 단순한 취미 기호에서 앞으로의 사회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로 바뀌었음을 느꼈다. 그래서 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된 이상, 나도 무슨 일이 있어도, 거기에 한 방, 무언가를 더해 보이겠다. 그리고 세상을 바꿔 보이겠다. 그런 설렘이 지금은 마음속에 소용돌이치고 있다. 이렇게, 무언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사회가, 역시 좋다.

이대로, 계속 도전을 거듭하여, 옛날처럼 세계를 이끄는 사회가 일본에 숨 쉬기를 바란다. 나도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는 없다.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일익을 담당하겠다. 그런 마음이 있다면, 실제로 사회가 도전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따위는, 특별히 생각할 의미도 없는 것이지만 말이다.

上山 翔太

이 게시물을 작성한 사람

上山 翔太

2007年からWEBデザイナー / エンジニアとして活動を開始。2015年には、セブ島にて立ち上げた日本人対象のクリエイター育成スクールと運営していたメディアを売却。その後、アメリカで事業デザインを無理やり学ぶ。帰国後は起業家育成プログラムを立ち上げ、新規事業開発、起業家育成に従事するほか、マーケティング戦略策定、ウェブ開発技術を提供。「IT留学シェアハウス」や「起業教育・支援プラットフォーム」を開発、運営。その後、株式会社QUONを立ち上げ。WEB制作事業を軸として、クリエイターと起業家を産む村づくりプロジェクトなどをバリ島と日本を中心に推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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